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이작 뉴턴 (문단 편집) === 각성 === 이렇게 다른 천재들보다 비교적 낮은 교육상태에 머물러 있던 뉴턴이 정점급 천재로 각성한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첫 번째로는 어머니로부터의 지원이 적어서 잡일을 하면서 배워야했던 서브시디어리(Subsidiary)였던 뉴턴을 정식 스칼라(Scholar)로 만들고 여러가지 혜택을 베풀어준 수학교수 아이작 배로(Isaac Barrow)와의 만남이고, 두 번째로는 1665–1667년에 [[페스트]]가 창궐하며 고향 울즈소프로 2년간 피신했던 '''창조적 휴가'''다. 22–24살에 걸친 이 시기에 뉴턴은 후대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뛰어난 창의력을 보이며 [[만유인력의 법칙]], [[역학]], [[광학]], [[미적분학]]을 직관적으로 발명하였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뉴턴이 생애동안 보인 정신능력의 최고점으로 친다.[* 1665–1667 시즌이 역대 최고의 상태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뉴턴 본인도 "발견에 있어 전성기를 이뤘다"라고 인정한 바 있다.] 이 당시 뉴턴의 지능은 말 그대로 일상적인 자연현상 속에서 세계와 우주가 내재하고 있는 성질을 추출해 발명하고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믿기 어려운 수준에 달했다. [[수학]] 연구 1년차에 [[유율법]]을 발명해 세계 최초로 [[미분]]을 창시하였으며 [[프리즘]]을 연구하여 빛의 성질에 대한 뛰어난 발견을 이루었다. 관측으로 이루어진 [[케플러의 법칙]]에 자신의 중력이론을 도입해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중세 우주론을 종결내었으며, 발표가 노년에 되었을 뿐 계산 자체는 이미 이 시기에 이뤄졌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을 고안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이 시기에 나온다. 이 정도로 전례없는 수준의 강력한 지적 각성의 원인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여러가지 추측들이 난무한다. 몇몇 정신의학자들은 뉴턴이 가진 [[정신분열증]]과 '''창조적 휴가'''가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분열증을 가진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려 하는데, 그 이유는 상대에 대해 둔감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서 자기 붕괴가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리학자들은 뉴턴이 배로와 같은 뛰어난 연장자와의 만난 일은 인생의 모델을 확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으나, 그 압도적인 영향력 때문에 자기 상실이 될 수 있는 위협이기도 했다고 진단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일시적으로 배로와 떨어진 덕에 뉴턴의 자아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흑사병]]으로 인해 벌어진 종말론적, 세기말적인 분위기도 뉴턴의 머릿속에서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이후 광학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망원경#s-3.3.1.2.2|새로운 반사 망원경]]을 발명해낸 업적을 인정받아, 1669년에 신학에 투신하기로 뜻을 굳힌 아이작 배로의 후임으로서 입학 후 약 10년 만에 케임브리지의 루커스 수학 석좌 교수직으로 올라서게 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말년에 성질이 더러워져서 성질 괴팍한 노인네라고 불렸다고. 그래도 전해오는 말로는 제자들이 "선생님이 한 업적이 많습니다."라고 말하자 피식 웃으면서 하던 명언이 있다. (하기 [[#명언|명언]] 문단 참조) 죽은 뒤에는 영국의 위인들이 잠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함께 사원에 안장된 과학자로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찰스 다윈]], 찰스 라이엘 등이 있다. 석관 위에는 그가 자신이 쓴 저서들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몸을 기댄 모습이 조각되었으며, 연구에 사용했던 망원경과 프리즘 등의 기구가 묘사되었다. [[라틴어]]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http://westminster-abbey.org/our-history/people/sir-isaac-newton|#]] ||<|2> [[파일:attachment/아이작 뉴턴/뉴턴묘비명.jpg|width=100%]] || H. S. E. [br] ISAACUS NEWTON Eques Auratus, [br] Qui, animi vi prope divina, [br] Planetarum Motus, Figuras, [br] Cometarum semitas, Oceanique Aestus. [br] Sua Mathesi facem praeferente [br] Primus demonstravit: [br] Radiorum Lucis dissimilitudines, [br] Colorumque inde nascentium proprietates, [br] Quas nemo antea vel suspicatus erat, pervestigavit. [br] Naturae, Antiquitatis, S. Scripturae, [br] Sedulus, sagax, fidus Interpres [br] Dei O. M. Majestatem Philosophia asseruit, [br] Evangelij Simplicitatem Moribus expressit. [br] Sibi gratulentur Mortales, [br] Tale tantumque exstitisse [br] HUMANI GENERIS DECUS. [br] {{{-1 NAT. XXV DEC. A.D. MDCXLII. OBIIT. XX. MAR. MDCCXXVI}}} || ||이곳에 아이작 뉴턴 경이 묻혀 있으니, [[하느님]]과 같은 정신력에 의하여 그가 발견한 수학적 원리로 행성의 운행, 혜성의 경로, 바다의 조석을 처음 밝혔으며, 일찍이 어떠한 학자도 의심하지 않고 있던 광선의 본성을 발견하였다. 또한 자연, 고대, 성서에 관하여 세밀하고 예민하며 확실하게 해명하여 전능하신 하느님이 존엄하심을 철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인류가 하느님 곁에 이토록 가까이 있었다는 것은 실로 우리의 큰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 1642년 12월 25일 출생, 1727년 3월 20일 사망.}}}[* 현대 날짜 기준으론 1643년 1월 4일 출생, 1727년 3월 31일 사망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뉴턴의 묘비명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알렉산더 포프]]가 뉴턴을 칭송한 글귀 (Nature and Nature's Laws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 And all was light.)[* Alexander Pope, Epitaph for Sir Isaac Newton, 1735]이다.[* 사원 내부의 기념물에 새기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